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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좌절감과 의심, 그리고 행복감</strong>
이제 막 8개월이 된 아기 이음은 하루에 두 번 이유식을 먹는다. 아직 모든 음식이 낯선 탓에, 의자에 가만히 앉아 차분히 숟가락으로 음식을 먹어야 하는 이유를 모르는 탓에 몸을 배배 꼬거나 소리를 지르며 이유식을 거부하는 일이 많다. 그럴 때면 전날 애써 만들어 둔 이유식이 아까운 나는, 무엇보다 영양분이 부족해 문제가 생기기라도 할까 걱정인 나는 각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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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떠나요, 모리스 음악 탐험대!</strong>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 1834~1896)는 19세기 후반 미술공예운동을 펼친 영국의 예술가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대량 생산된 공산품들에 충격을 받고선 실용적이면서도 예술적일 수 있는 생활 용품들을 직접 만들던 사람이죠. 자신이 살던 집 역시 자연에서 모티브를 따온 아름다운 곡선으로 채웠어요. 덩굴 모양의 벽지를 그리고 커튼을 칠하고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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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 /><strong>뻐꾸기 소리를 들어본 적 있나요?</strong>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에게 ‘자연’은 일상일까요? 이제 자연은 더이상 인간과 더불어 사는 존재가 아닌 듯 느껴집니다. 삶과 분리된 존재, 시간을 내서 찾아가야 하는 휴가 같은 존재가 되었죠. 새소리 바람소리 나무소리 물소리… 자연이 내는 소리는 어떻게 들을 수 있나요? 네. 유튜브로 듣습니다. 예전에는 창만 열면 들려왔던 소리들을요. 21세기는 그런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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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연출가 배리 코스키 : 유태인 게이 캥거루</strong>
현 시대의 이슈는 지금도, 앞으로도 ‘다양성’일 것입니다. 그동안 역사적으로 우리가 구분지어 온 인종과 민족, 직업과 성 정체성, 동물권, 가상과 현실 경계마저 사라지고 있는 그야말로 다종다양한 세상이니까요. 신기한 인물사전에서 다룰 ‘예술계’는 그 다양성 안에서도 많은 것들을 더 개방하고 포용해야 한다고 외치죠. 전통을 고수하던 오페라계만 봐도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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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프랑스에서 펼쳐보는 예술가 이야기</strong>
세상엔 정말 신기한 사람이 많아요. 특히나 무언가를 창조하는 예술계에는 더욱이요. 21세기의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 발명하고 창조해낸 음악과 무용과 그림을 즐기며 삽니다. 연주자의 움직임에 따라 잔향이 바뀌는 모션 수트라거나, 뉴욕의 언어공학자가 텍스트를 보내면 그걸 프랑스의 무용수가 몸으로 해석한다거나, 무대 아래 물을 가득 채워 놓고 배우들이 바닥을 뜯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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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변칙소나타</strong>
온전히 혼자이고 싶었다. 새벽의 어슴푸레함은 본능을 깨웠다. 새벽 6시가 되면 다인의 둔탁한 구두소리가 정동길을 메웠다. 다인은 새벽녘 공기를 마시며 학교 가는 길이 좋았다. 소음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유일하게 고요를 누리는 시간. 앞코가 헤진 구두를 바라보며 걷다 보면 어느덧 예술중학교 담벼락에 다다랐다. 다인이 제일 먼저 향하는 곳은 음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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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디아의 레슨실을 찾아가는 마음으로
우리의 이름 『나디아의 수요일』은 20세기 음악사에 큰 영향을 끼친 프랑스의 여성 음악가 나디아 불랑제(Nadia Boulanger, 1887~1979)로부터 왔습니다. 작곡과 지휘, 오르간 연주에도 능했지만 나디아 불랑제는 무엇보다 수백 명의 제자를 길러낸 교육자로 잘 알려져 있어요. 애런 코플랜드, 아스토르 피아졸라, 키스 재럿 같은 이들이 그의 문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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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세계관에 살고 있어요?
안녕하세요. 금요일 오후 5시 22분. 너무 더워서 집에 오자마자 에어컨을 틀었습니다. 편지가 거의 한 달이 늦어졌네요. 미안한 마음부터 전합니다. 일을 하며 오랫동안 연을 맺었던 사람과 안 좋은 일로 관계를 정리했고, 복잡한 감정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어요. 기꺼이 시간을 내어준 호경 선배와 윤혜 씨의 배려가 고맙습니다. 장혜선을 둘러싼 세계에 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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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개의 세계관, 세 개의 플레이리스트
같이 사는 이에게 종종 묻는다. 전생이 있다면 누구였을 것 같아? 조선 사람이었다면 어떤 직업을 택했을 것 같아? 과거로 회귀한다면 어느 시대로 가고 싶어? 그럼 그는 나에게 대체 그런 걸 왜 묻느냐, 황당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그러면서 더 나은 미래로 가자며, 주식과 부동산 얘기를 이어나간다. 만사에 조용한 그가 유일하게 수다쟁이가 되는 순간.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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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드는 사람들
김호경 듣고, 쓴다. 음악을 위한 글을 쓴다. 클래식 음악 전문 기자로 일하며 『월간객석』 외 여러 매체에 글을 썼고, 연세대학교 커뮤니케이션대학원에서 미디어를 통해 음악을 경험하는 사람들을 연구했다. 그간 음악 예술 담론에서 중심을 차지했던 음악 작품을 잠시 옆으로 밀쳐 두고 감상자의 경험을 논의의 한가운데로 불러온 『플레이리스트: 음악 듣는 몸』(작업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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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책감, 지루함, 낯섦 그리고 감격스러움
‘위로 감옥’에서 벗어나 수십 번씩 바뀌는 엄마 감정의 결을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육아 일기 그 두 번째 이야기. 죄책감 죄책감이란 감정은 생경하고 또 놀랍다. 이렇게 한 존재에 대해 시도 때도 없이 죄의식을 느끼는 일은 아마 출산과 양육의 시기를 제외하고는 겪을 일이 없을 것이다. 아이가 밤중에 열이 나면 엄마는 자신이 행한 모든 일을 되짚어 떠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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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클라우스 메켈레 : 지휘 천재의 등장
그의 이름을 처음 들은 것은 2020년 6월이었습니다. 파리 오케스트라의 차기 상임 지휘자를 발표하는 자리에서요. 그런데 새 지휘자가 24살이라는 겁니다. 24살이라니! 지휘계에 이렇게 젊은 수장이 탄생한 적이 있었던가요? 그건 그렇고, 전임 지휘자 대니얼 하딩과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오케스트라가 드디어 잠잠해지는 걸까요? (당시의 파리 오케스트라 상황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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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로 음악을 연주할 수 있을까?
‘타악기’ 하면 어떤 악기가 떠오르나요? 북이나, 드럼, 실로폰, 심벌즈 트라이앵글… 가죽이나 나무, 금속 표면을 두드리는 것이 떠오르는데요. 장구, 징, 꽹과리도 마찬가지네요. 그런데 오늘 소개하려 하는 이 악기는 그 무엇도 아닙니다. 바로 돌로 만들었기 때문이죠. 돌을 때려서 소리를 낸다고요? 돌로 연주하는 사람을 본 적 있나요? 돌에 어떤 높낮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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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글을 쓸까요?
밤이 길어지는 날들입니다. 인스타그램을 쉰 지 보름 정도 되었어요. 어찌나 홀가분한지. 습관적으로 휴대폰을 들었다가도 금세 내려놓아요. 자연히 인터넷 뉴스도 덜 보게 됐고요. 평소 같았다면 친구들이,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사는지 휙휙 넘겨보다가 한두 시간은 훌쩍 갔을 텐데. 휴대폰을 들여다보지 않으니 삶이 활기차요. 빵과 케이크를 굽고, 프랑스 영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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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을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건
현기증이 났다. 건축가이자 수학자이기도 한 현대음악 작곡가에 대한 글을 쓰며 그의 계산적인 음악을 듣고 있자니. 목이 막힌 사람처럼 슈베르트를 틀었다. 갈급했다. 어린 시절 용돈을 모아 처음으로 산 씨디에서 흘러나오던 낭만 선율 같은 것들. 음악을 음악으로 받아들이던 포근한 밤들. 충격과 불협의 현대음악 사이를 탐하는 나지만 결국 나의 정신 깊은 곳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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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콰르텟
뭉뚝한 손가락이 모래알을 흐트러뜨렸다. 고작 며칠 연습하지 않았다고 굳은살을 덮었던 껍질이 벗겨지고 있었다. 거친 손끝에 고운 모래 입자가 스치자 서러워졌다. 삼 일 동안 혼이 나간 사람처럼 서핑만 한 탓에 손바닥은 얼얼했다. 모래를 쥔 손을 펴자 물집이 통통하게 오른 왼손바닥이 보였다. 물집이 잡힌 손바닥, 굳은살이 벗겨지고 있는 손가락은 퍽 이질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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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잉볼과 설렁탕 그릇의 상관관계
언제부턴가 ‘싱잉볼’이라는 이름을 자주 듣게 됩니다. 금속 그릇처럼 생긴 이 악기의 울림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준다며 명상이나 요가를 할 때 연주하기 시작했죠. 저도 요가 수업을 마칠 때쯤 은은하게 지속되는 금속 소리를 들으며 긴장을 풀었던 기억이 나요. 이처럼 현대인의 삶에 요가나 명상이 일상화되며 싱잉볼의 존재도 널리 알려졌습니다. 최근 ASMR이 유행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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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이 되지 않는 이야기를 끌어안고
안녕. 잘 지내고 있나요. 지금 제가 앉아 있는 카페에는 신나는 크리스마스 캐럴이 흘러나옵니다. 예전보다 그리 설레지도 기쁘지도 않은 건 나이를 먹어서일까요, 온갖 화면을 통해 세상의 비명이 울려 퍼지기 때문일까요. 대단한 행복을 기대하기보다 고요하고 평온한 내일을 바라보는, 조금은 서글픈 요즘입니다. 돈 이야기를 하기로 했죠. 복잡시러운(!)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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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이라는 지독한 환상
돈의 자리에 신이 있던 시대를 생각한다. 얼마 되지 않을 수입에도 더 잘해 보겠노라 진을 쏟다 찌들릴 때면. 오르간 한 대로 만들던 음악이 그토록 찬연할 수 있음을 기억한다. 신께 더 나은 음악을 바치리라는 결의. 신을 위한 음악을 쓰며 월급을 받던 이들에게도, 언제나 신은 월급에 앞선 존재였다. 신이 사라진 시대의 돈을 생각한다. 그 시절 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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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에 한 번, 당신에게 편지를 보냅니다
나디아 불랑제의 레슨실을 찾는 마음으로 💌 2주에 한 번, 『나디아의 수요일』의 콘텐츠 일부 혹은 새로운 글을 보내드립니다. 클래식 음악과 그 주변의 이야기를 수집하고 기록한 우리의 이야기를 통해 당신의 일상도 음악적으로 흐르길, 그 흐름 속에 위대한 순간이 반짝이길 기대하며. 뉴스레터는 격주 수요일 오후 3시에 발송됩니다. 💌 뉴스레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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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올리니스트 니콜라 도트리쿠르 : 자기 확신의 아이콘
보르도의 오래된 샤토에서 열린 실내악 축제에서였어요. 단정한 옷차림의 관객들 사이에 카고 바지를 입고 배회하는 한 남자가 눈에 띄었죠. 손목에는 플라스틱 팔찌를 차고 있네요. 전날 강렬하게 버르토크 소나타를 연주했던 바이올리니스트 니콜라 도트리쿠르(Nicolas Dautricourt, 1977~ )였습니다. 현재 베르사유 음악원 교수이자, 샤토의 오너인 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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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타령 돈 타령
『나디아의 수요일』이 세 번째 발행을 맞았습니다. 한여름 폭염 아래 시작된 편지가 어느덧 새해의 기쁨을 전하고 있네요. 이번 호의 주제는 ‘예술은 예술이고 먹고는 살아야지’ 입니다. 서울, 인천 그리고 프랑스 칸에서 각자 화상 통화 앱을 켜고 만나 예술 타령과 돈 타령을 번갈아하던 우리 셋은 본격적으로 ‘예술과 돈 타령’을 해보기로 합니다. 어때요, 새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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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그리고 말러
‘드라이브 마이 카’라는 제목으로 새로운 칼럼을 시작합니다. 음악가와 음악 작품은 잠시 옆으로 밀어 두고 감상자의 경험을 한가운데로 불러옵니다. 감상이 이루어지는 순간에 부유하는 언어들을 채집하여 기록합니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운전하는 동안에 들은 음악, 그로부터의 흥취와 생각을 적어 보려 합니다. 엄마가 되고 보니 음악을 들을 시간은 없고, 들은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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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에 홀린 피에로
바람결이 수엽을 스치는 소리가 요란했다. 몸집만 한 캐리어를 끌고 중앙역에 올라오니 솔아를 맞이하는 건 지독한 담배 연기였다. 7월의 베를린 하늘은 여름이 무색할 만큼 잿빛이었다. 얕게 부는 바람이 땀에 흥건히 젖은 솔아의 등을 다독여 주었다. 솔아는 풀어진 눈동자에 생기를 모으고 베를린의 풍경 곳곳을 마음에 담았다. 뭐가 됐든, 뭐라도 되지 않으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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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기 위해, 천천히 움직이며
목정원 작가의 책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을 읽다 알게 된 것인데 ‘몸 풀기’를 뜻하는 프랑스어 échauffement는 ‘데우기’라는 의미도 지니고 있다고 한다. 여기 ‘다시’를 뜻하는 re를 붙이면 ‘따뜻한 계절이 돌아옴’이라는 말도 된다고. 중얼거려 본다. 다시 데워짐, 그리고 돌아온 계절. 처음 맞이한 봄보다 훨씬 애틋하고 벅찬 느낌. 사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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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 사무엘슨 그리고 어떤 허기
혹시 이런 표현을 아는지? ‘안 추운데 추워’ 혹은 ‘혼자 있고 싶은데 혼자 있기 싫어’ 같은. 상대방으로부터 어쩌라는 거냐는 핀잔이 따라오고야 마는 요상한 표현들. 그래도 정말이지 안 추운데 추울 때가 있다. 출산 후 더 잦은, 몸이 휑하고 허한 느낌. 괜히 발만 시린 느낌. 혼자 있고 싶은데 혼자 있기 싫은 날도 정말로 있다. 피로감과 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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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rong>Échauffement. 세상을 마주하기 전 몸 데우기</strong>
새봄이 시작되는 3월, 네 번째 『나디아의 수요일』을 발행합니다. 이번 호는 ‘échauffement’ (세상을 마주하기 전 몸 데우기)을 주제로 삼았어요. 목정원 작가의 『모국어는 차라리 침묵』을 함께 읽으며 발견한 표현으로, 무언가를 시작하기 전의 몸풀기, 데우기를 뜻합니다.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고, 바라보고, 그것에 대해 생각하는 일. 곧 사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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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나은 인간이 되기 위한 노력
창밖을 보니 미세먼지가 땅에 가득 내려앉았네요. 언젠가부터 추위가 한풀 꺾이면 봄이 오는 길목에 덩그러니 놓인 낯선 불청객을 마주합니다. 오늘은 남편과 함께 점심 식사를 하러 외출을 하다가 동네를 가득 덮은 미세먼지를 보며 미간을 찌푸렸죠. 옆에서 남편은 이 불결한 것을 피해 동해로 내려가 살고 싶다고 하더군요. 먼지가 폐포를 뚫고 몸속에 침투할까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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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완성 협주곡
어두운 밤, 환한 불빛이 눈동자를 찔렀다. 피로감에 젖은 눈을 비비며 시계를 보니 어느덧 새벽 3시. 슬슬 뻐근함이 느껴져 소파에서 이리저리 몸을 뒤척이다 티비를 껐다. 7평짜리 방에 텁텁한 공기가 가득한 것 같아서 창문을 열었다. 청량한 바람이 살랑거리며 얼굴을 쓰다듬으니, 잠시 멈춰 있던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다. “아무리 주말이라지만, 드라마를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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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몸, 아름다운 악기
한국에 들어와 조카를 만났어요. 태어난 지 1년 6개월이 된 아기죠. 재작년 목도 못 가누던 신생아 시절에 보고 출국했는데, 다시 돌아오니 저를 보고 ‘이모’하고 말하더군요. 아기의 목소리는 너무도 맑고 순수했어요. 모- 이머- 이- 모- 티없는 목소리. 저도 모르게 그 목소리를 듣고 싶어 자꾸 이모, 하고 불러봅니다. 다음에 한국에 올 때면 문장을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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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프라노 프리티 옌데 : 파리의 첫 흑인 비올레타
세계에서 가장 자주 공연되는 오페라 중 하나는 베르디의 ‘라 트라비아타’입니다. 모차르트의 ‘마술피리’와 늘 1,2위를 다투죠. ‘라 트라비아타’는 지난 5년간 무려 4,299회가 공연됐어요. 1년에 약 860회로, 그 중 1/4가량인 1,061회가 새로운 연출이었습니다.[1] 그러니 매일밤 지구 어딘가에서 두 편의 ‘라 트라비아타’가, 이틀에 한 번은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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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속 유령
막다른 곳에 도달하자 되레 머리가 맑아졌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알았기 때문이다. 청승맞은 여주인공 역할도 마음의 여유가 있어야 가능한 일이었다. 한 달 전, 임신 30주 차에 들어서던 그때 갑자기 남편이 죽었다. 남편은 오페라 가수였다. 남부러울 것 없는 유학과 콩쿠르 경력이 있었지만, 해외에서 그가 설 수 있는 무대는 소수였다. 지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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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고 싶은 장면들
이번 호의 주제는 호경이 들은 황당하고도 슬픈 이야기로부터 시작되었어요. 미니멀리즘 음악은 의외로 논리적이고 복잡한 음악이라, 여성 음악가들은 미니멀리즘 음악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나요. 그날은 무려 세계 여성의 날이었죠. 우리는 이 사건으로부터 여성과 음악이라는 키워드를 마음에 품었습니다. 여성과 음악 업계 종사자로서 겪어 온 각자의 이야기를 꺼내고, 나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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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상상
두 사람이 나눈 대화가 제 휴대전화 메신저에 쌓여 있는 걸 확인하는 일은 요즘의 일상 속 작은 기쁨입니다! 바로바로 답을 하지 못해서 미안하지만요. 근래 우리는 애플뮤직 클래식 앱 출시 소식, 세계 여성의 날, 영화 <타르> 같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했죠. 애플뮤직 클래식 앱이 미국에서 먼저 런칭하며 고전 시대, 낭만 시대 작곡가들의 초상화가 고화질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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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었을까
주제(motive, 동기)를 짓는다는 건 하나의 선언과도 같다. 고전, 낭만 시대의 작곡이란 그랬다. 짧게는 두 마디, 혹은 넷, 여섯 마디 정도로 이루어진 하나의 악구는 이후의 변형, 발전, 전개를 가능케 하는 아주 주요한 ‘시작’이 되었다. 물론 오늘날의 작곡 또한 하나의 테마, 아이디어 같은 게 중요하긴 하지만 엄격한 규칙을 따르던 서양의 전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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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 소리는 왜 편안할까?
바닷가에 사니 좋긴 좋군요. 뻥 뚫린 하늘과 바다가 옆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더라고요. 일이 잘 안 풀리거나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해변가로 달려나가 벌러덩 누워 버려요. 그리곤 파도 소리를 듣죠. 쏴아아- 쏴아아- 규칙적으로 밀려왔다 사라지는 파도들. 끝없는 너울이 마치 최면을 거는 듯해요. 평생 내륙에 살다 이제 막 바닷가에 정착한 저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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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휘자 로랑스 에킬베 : 프랑스 여성 지휘의 선구
“클래식 음악계의 성 차별에 대해서라면, 저는 불평할 것이 없어요. 저보다는 마린 올솝이나 조안 팔레타, 로랑스 에킬베, 나탈리 슈투츠만에게 물어보셔야 할 것 같네요. 저보다 먼저 등장해 진정으로 여성 지휘자의 지위를 끌어올린 훌륭한 분들이니까요.” 영화 <타르>의 첫 장면. 베를린 필 최초의 여성 지휘자로 설정된 리디아 타르가 ‘뉴욕 타임스’ 기자의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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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카모토의 음악 안에 서성이며
나이가 들어가며, 다양한 죽음을 각각 다른 방식으로 몸에 새기며 그렇게 나아가는 것 같다. 어느 날은 유명인의 느닷없는 죽음을 화면을 통해 마주한다. 어쩌다 그랬대, 사람들의 말이 뒤따르는 그 장면이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순간이 비현실적이다. 사회적 참사라 일컬어지는 사고도 아주 가끔이지만 우리의 일상에 있다. 한없는 무기력감, 안도와 미안함과 허망